2020. 8. 21. 01:19ㆍ리퀘
나는 가끔 중력이 정말 주관적이라는 생각을 한다. 분명 지구 중심 방향으로 향한다고 떠돌이 거지의 형상을 한 과학자가 말한 거 같은데, 지구 중심 방향으로 향한다면 이미 내 존재는 땅 속으로 꺼져버렸을 거 아니야. 노을이 지는 것도, 꽃의 뿌리가 아래로 향하는 것 전부 중력이라고 하는데, 우습게도 중력은 잡념의 방향을 바꾸지는 못하잖아. 나를 끌어당기는 중력의 근원은 어디서 나오는 거야? 너를 꼭 품에 안고 싶은 그런 욕망? 가끔은 꽃과 리디아가 아닌 '나이르'에 전념해주었으면 하는 불순하고도 가장 날 것의 소망?
괜히 유리창에 놓여진 화분을 바라만 본다. 언뜻 신난 투로 내게 말하는 우즈가 생각나는데, 꽃의 이름은 벨라도나였던가. 이탈리아의 여자들이 매력을 어필할때 눈두덩이에 바른다고 들었지. 그러나 웃긴 건, 꽃의 향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야. 매혹적인 향기로 마음을 사로잡는 것도 아니야, 색소가 있어 얼굴이 조금 더 예뻐보이는 것도 아니야. 그저 눈동자가 커진다는 이유로 벨라도나의 즙을 내어 눈동자에 넣어... 윽. 굳이 그런 짓까지 하면서 미모를 어필해야만 할까? 나는 사람의 매력 중 으뜸은 향기라고 생각하는데. 가끔은 저 유리창 너머에서 향수를 만들기 위한 모란을 한다발 들고 오는 널 보면 그 풀 냄새. 신선하다 못해 파릇파릇하게 생동력을 가진 그 향기가 생각 나. 네가 매일 내게 모란을 가져다주는 이유는 내가 그 향기와 어울려서라고 했지.
우즈, 난 작약이 좋아.
모란과는 닮았지만 전혀 향기를 지니지 않았거든. 나의 향기는 존재하지 않아.
멋대로 중력이 이끌었다는 핑계를 대며 달이 가장 빛나게 떴던 그 밤에 나는 이미 새로운 향기를 얻은 셈이야.
멋대로 빼앗아버린 생활에 익숙해졌다는 건 제일 괴롭고도 눈부신 일이고. 장미 2스푼, 단향 5스푼, 마시멜로, 자단목 1스푼이라는 명제로 정의할 수 있던 그 삶을 욕심이라는 독으로 물들여 살아온 내게 향기가 주어질 자격이 없겠지.
문득 우즈는 물었지.
사랑의 향기는 무엇을 넣어야 완성되나요?
당신의 사랑에서는 아무 향기가 느껴지지 않아요.
나는 당신의 사랑에서 우즈의 향기가 났으면 좋겠어요.
우즈의 향기가 스며들기에는 이미 너무 많은 향기를 묻혀버린 삶이라, 사랑이라.
사랑의 향기는 어쩌면, ...커져버린 눈동자에 너를 한가득 담을 수 있는 벨라도나의 향기와도 같지 않을까?
너는 이런 날 두고 벨라도나를 선물한 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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